광범위한 예방적 살처분 정책만이 능사인가
보상금만 1400억원 넘어 위험 지역 살처분 했어도.....
지난해 1월 전북 고창의 한 종오리 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여전히 잡히지 못한 채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고병원성 AI는 지난해 1월 16일 고창에서 최초 발생 한 후 7월 25일 이후 추가 발생이 없어 9월 4일 이동제한을 해제 했지만 9월 24일 영암 육용오리 농장에서 추가로 발생했다.
그 후 전남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다, 11월 7일 전북 김제에서 추가로 발생했고, 12월 11일 경남 양산, 12월 13일 전남 나주, 12월 26일에는 경기 성남 모란시장에서도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서 방역당국을 긴장케 했다.
이번 고병원성 AI는 발생 기간이 360여일로 과거 네 차례의 고병원성 AI 사태와 비교해 가장 길다. 살처분 된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1500만 마리에 이르고 살처분 보상금 등 피해액 규모도 1400억원을 넘었다.
# 우리나라의 살처분 정책과 문제점
우리나라 AI 방역 SOP에는 발생농장 반경 500m 이내 가금류에 대해서만 예방적 살처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문가 의견 등을 반영해 예외적으로 3km까지 살처분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3km 이내 위험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바이러스가 수평전파 될 경우를 사전에 차단하고 예방적 살처분 조치를 통해 AI의 확산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취해지는 조치다.
실제 현장에서는 반경 3km 까지 확대해 적극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시행한 경우가 많아 예방적 살처분 규모가 급격하게 늘었다.
지난해 4월 22일 기준, 28개 AI 발생 농장의 살처분 마리수가 53만마리로 총 살처분 마리수인 1276만마리의 4.2%에 불과하며 반경 500m이내 오염지역 살처분 마리수가 12%인 151만마리, 500m ~3km 반경의 위험지역 살처분 수량이 1072만수로 84%를 차지했다.
따라서 당시 예방적 살처분 마리수가 95%에 달했는데도 이후 AI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자 정부의 살처분 정책이 비과학적인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 여론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 1월 28일 전북 정읍시 영원면 소재 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자 당초 해당 지자체에서 3km 반경 이내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 하기로 했다가 논란 끝에 2월 7일 살처분 범위를 500m 이내로 축소하고 위험지역 3km내 가금류는 이동제한 조치만 내렸다. 그 이후 아무 문제없이 이동제한 기간이 경과해 해당 계군을 출하했다. 이는 반경 3km 농장까지의 살처분이 과잉 대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로 전해지고 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침출수와 방역작업에 투입된 약품성분들로 인해 토양의 이차적 오염에 대한 피해가 불가피하고, 동물복지 측면에서도 현행의 살처분 정책은 가축에 대한 기본적인 생명존중 의식이 결여 돼 있다는 지적이다.
# 외국의 살처분 정책은?
2014년 4월 13일 6차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일본의 경우 발생농가에 한해서만 24시간 이내에 살처분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살처분 보상비용 최소화는 물론 언론의 노출도 상대적으로 적어 고병원성 AI 발생기간에도 닭고기 소비위축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역시 고병원성 AI 발생농장 반경 3km이내 가금류 농장에 대해 이동제한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동제한 지역 내에 있는 종계농장에서 산란한 종란에 대해 해당 종계가 고병원성 AI 음성판정이 나올 경우 반출을 허용해 부화용 종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고병원성 AI가 수차례 발생했던 미국도 AI 방역 SOP 발생농장 계군만 24시간 이내 살처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2마일(3.2km) 반경 내 위험지역 가금류에 대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위험지역 내 종계에서 생산한 종란의 경우 해당 종계군이 고병원성 AI 음성 판정을 받을 경우 이동해 부화용 종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는 고병원성 AI 반경 500m내에서 선택적 살처분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AI 방역 SOP를 벤치마킹해 과도한 살처분으로 인한 직·간접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광범위하고 연속적인 살처분 사태로 인한 언론의 보도 역시 줄어들게 됨으로써 과도한 소비위축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개선방안
과잉 살처분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방역당국도 살처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새롭게 마련된 방역당국의 살처분 개선안은 과학적 분석을 기초로 방역상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방역대를 설정하고, 이동통제와 살처분을 최소화한다는 기조다.
개선안에 따르면 방역대는 현행 500m, 3km, 10km로 일률 설정된 것을 지형 및 역학적 특성 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설정한다. 기본 틀은 유지하되 위험분석 후 지역여건에 따라 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살처분은 방역대내 일괄 방식에서 선별적 방식을 채택해 추진한다. 현행 500m 또는 3km 예방적 살처분에서 발생농가 살처분을 원칙으로 하되, 방역대내 발생, 신고시기, 축종, 역학관계, 방역실태 등을 고려해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또 방역대내 가금 및 알은 현행 전부 이동제한에서 안전성 확인 후 출하가 가능토록 제도를 개선한다.
정부의 이 같은 개선안은 가금 관련 생산자단체와 학계, 환경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건의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개선안은 살처분 두수 감소와, 자원낭비 축소, 국민 공감대 형성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선안이 실행될 경우 AI가 확산될 가능성 우려에 따라 이에 대한 보완으로 사전 준비 체제 강화가 주문되고 있다.
가상방역훈련(CPX) 강화, 초동대응 전문가 풀 구성, 종합 관제시스템 구축, ICT 기술 활용을 통한 역학조사의 신속·정확성 제고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살처분 방식 및 사후관리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살처분은 이산화 탄소 등을 활용해 인도적으로 안락사 시킬 수 있도록 사육방식별 살처분 장비를 지원하고, 동물의 습성에 따라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살처분 방법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현장에서 직접 방역에 참여하고 있는 방역관 및 일선 양계전문 수의사들은 동절기 일정기간 동안 AI에 감수성이 예민한 오리 및 산란계 농가에게 정기적으로 혈청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해 양성반응이 나올 경우 해당 계군을 살처분 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한 가금 사육농가는 “살처분 보상비는 물론 살처분 작업 공무원 동원 등에 따른 행정력 낭비, 국민적 불편과 축산업에 대한 혐오적 인식 확산 등 무형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AI 발생농장에 대해서만 신속하게 살처분 조치하고 AI 바이러스에 민감한 오리 등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 강화 등 별도의 대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SOP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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